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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1 H.P. 러브크래프트 - 광기의 산맥
  2. 2011.08.01 종이여자 - 기욤 뮈소 2

『광기의 산맥』은 미스캐토닉 대학의 탐사대가 남극의 지질을 연구하러 갔다가 1만여 미터의 산과 고대 도시, 화석을 발견한 뒤 겪게 되는 무섭고도 신비한 이야기를 담은 중편 소설이다. 지구의 역사를 '올드 원'이라는 외계 종족의 입장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를 했으며, 이 역사에서 인간은 철저히 배제 당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올드 원'들이 만든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올드 원'들에게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다른 피조물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점에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외계의 존재를 도입함으로써 철저히 '올드 원' 중심의 지구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다만 『우주에서 온 색채』, 『허버드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 『에리히 잔의 선율』같은 경우에는 지금 얘기하고 있는 『광기의 산맥』과 더불어 그나마 흥미롭게 읽었던 중/단편이다.

어찌됐든, 『광기의 산맥』의 백미는 산과 고대도시, '올드 원'과 다른 외계 종족들과의 투쟁 역사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산의 정상, 고대 도시는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된다. 구조물의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중량감과 터질 듯한 양감, 더불어 모순적이게도 그러한 정경들이 환상과 생경함이라는 안개와 같은 이미지에 둘러쌓여 있는 느낌은 굉장히 낯설다. 마치 벡진스키의 그림이나 만화가 니헤이 츠토무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묘사는 장황하고 뭔가 부유하는 느낌이라 확 와닿지 않는 느낌이 많았다. 그런데 『광기의 산맥』에서는 그러한 장황함이 신비감을 더해주는 듯 해서 오랜 비밀을 담고 있는 '올드 원'의 고대 도시 이미지에 딱 들어 맞았단 느낌이 들었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공포감을 느낀다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러브크래프트가 주는 자극보다도 더 원초적이고 직접적이면서 극대화된 자극을 너무나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공포의 절대역에도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서 나타나는 외계적 존재가 촉수, 바다나리, 양서류, 물고기, 비린내 등의 해양적 요소에 의해 외형이 결정된다는 사실 또한 우리에게 미지의 공포를 주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만의 광활한 세계관과 그 장황한 묘사, 상상 밖의 외계적 존재가 주는 알 수 없는 불안감만큼은 손에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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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글들은 자칫 잘못하면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정말 가벼운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죽음 같은 진지한 것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별로 와닿지는 않는다는 것이 너무 아쉽게만 느껴진다. 솔직히 기욤 뮈소의 소설은 흥미를 유발하는데에는 탁월하지만, 한 번 읽고나면 여운이 남는다던지, 교훈을 얻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벼운 수준의 감동과 재미를 얻는 것에 그친다고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낀다.
작품들 간의 전개방식이 너무 유사한 탓에 항상 다른 작품을 읽어도 그 책이 그 책 같은 느낌을 받고, 구별이 안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당신 없는 나는?" 이전의 대부분의 작품들의 주인공이 의사였다는 점, 항상 성공 뒤에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는 주인공들, 판타지같은 스토리라인, 마지막의 반전까지 이제 그의 소설의 구성은 안읽어봐도 스토리만 틀리다 뿐이지, 전개 방식의 유사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종이여자"는 기욤 뮈소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다. 억지스러운 전개가 있긴 하지만, 책에서 자기가 쓴 등장인물이 튀어나왔다는 황당한 소재를 기발하고 재밌게 이야기 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전과 같이 스토리 전개는 굉장히 빠르고, 사건들이 진행되고 결말까지 치닫는 속도는 정말 빠르기 때문에, 진짜로 빨리 읽힌다. 확실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상미, 영화를 '읽는다'라는 느낌을 받는 점에서는 감탄까지 나오기도 하지만, 한 번 읽으면 이제 두 번은 못읽는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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